기록하고 낭독하라 것은 우리가 살아갈 때 너무 잘 잊어버리기에 기록하는 습관은 좋은 것이요, 낭독은 읽기에 해당하기에 행동이 바뀌게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읽을 때
가능합니다.
치매예방에 좋은 것 중 하나가 기록하는 것이요, 낭독 즉, 읽기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함으로 치매 예방에도 좋고
말과 행동이 변화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나이가 먹었다 것이 확연히 느낄 때가 있습니다. 깜빡깜빡하면서 잘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방에 들어가서 뭘 찾으려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서는 뭘 찾을려 왔는지를 잊어버리고 생각이 안 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래서 기록하려고 하는데 문제는 기록만 하고 집에 와서는 한 번이라도 읽어 보아야 하는데 안 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언제나 새롭게 들릴 때가 많습니다.
기록하고 낭독하라
기록하고 낭독하는 습관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오늘 새벽예배 본문 렘 36:1~9입니다. 본문 중에 기록하고 <낭독>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는 것은 강조하는 것이요, 오늘의 주제의 말씀이라 할 수 있지요.
1절에 보면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4년에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는데 2절 <기록하라>입니다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기록하라입니다.
그 말씀은 바벨론에 항복하고 그곳에 끌려가 눈물 젖은 빵을 먹은 70년 후 다시 고국 이스라엘 돌아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20년 동안 한결 같이 왕에게 백성들에게 전 하였지만 들은 척도 안 합니다.
오늘 우리(나)와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20년 아니 30년 넘게 말씀을 듣고 기록할 것을 조금 기록하였지만 집에 와 안 보기 때문에 변화가 별 없는 걸 볼 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말씀을 들었다면 행동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안 했다는 것은 결국 말씀을 잘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의 20년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전 했지만 그들은 안 돌아온 것입니다.
안 돌아왔다는 것은 듣긴 들었지만 순종을 안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말씀을 안 들은 거나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왕 같은 경우에는 악한 왕이라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 중 애굽과 동맹을 맺지 말라 했는데 친애굽 정책을 쓰고 있으니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겠느냐는 것입니다.
바룩이 기록하고 낭독하다
하도 그러하니까 예레미야를 가두어 버리자 예레미야는 바룩을 불려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게 합니다.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들에게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백성들에게 <낭독>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자 바룩은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낭독을 합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을 많이 듭습니다.(롬 10:17) 들음은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 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에서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 기름 붓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왕, 제사장, 선지자이십니다.
그리고 기름 부 음은 성령님을 말할 때도 쓰이는데요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들음인데,
이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성령님이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는 말씀인데 여기서 레마의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고스와 레마는 저번 살짝 언급했는데 오늘은 내용이 길어 질까 봐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낭독, 소리 내어 읽거나 선포하기
낭독은 큰소리로 읽거나 선포하는 것인데 생활 가운데
행하시면 자신도 모르게 변한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들께서 말씀을 낭독하거나 강론하실 때 일단 잘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그냥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듣자는 것 강조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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