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빨라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눈치를 보아서 해야 하는지 아래 있는 글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무쪼록 끝까지 보시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느냐에 따라 담대함이 나옵니다. 눈에 보이는 세력에 눈치를 보다가 낭패를 당한분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누구를 의식하고ㅈ눈치를 보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담대함
학창 때는 데모가 한창이었습니다. 근데, 항상 앞장서는 과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평소에 말이 없고 뒷전이었는데 데모가 있는 날에는 얼마나 용감한지요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각목을 휘두려고 총장실점령도 제일 먼저 들어간 자로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그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도 궁긍합니다.
오늘 새벽예배 본문 행 4:13~22인데 18~21절만 읽었습니다. 어제 말씀이 이 여지는 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과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라고 백성들을 가르치니까 기득권을 가진 종교지들자들이 잡고 하는 말이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묻자
베드로가 성령충만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자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놀랍니다.
이들은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고 있고 예수와 함께 있었던 것만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하지 하면 이상이 여겼던 것이지요 더군다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가 고침을 받고 그들과 함께 있으니 비난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눈치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르침으로 남자만 5천 명이나 되니 또 함부로 할 수 없고 그래서,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을 가진자들이 눈치를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함부로 재판하였다간 5천명이 술렁거릴 눈치 군중들의 눈치 여론의 눈치 밥그릇이 왔다 갔다 하는 로마정부의 눈치 이래 저래 눈치를 보니까 어쩔 수 없길래 서로 의논하여 민간인에게 더 퍼지지 못하게 의협하고 예수이름을 전하지 못하게 하자고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불려 경고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도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마하고 으름장을 놓고 경고합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은 말할 수가 없다> 또 한 번 담대히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눈치
그래서, 오늘 새벽예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께서도 설교 제목이 <담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이 담대함이 어디서 나오는가?
목사님께서는 신, 구약 말씀을 해박하게 말씀을 하시면서 <성령충만>에서 나온 것임을 말씀을 통해 풀어 주실 때 또 한 번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충만함 이였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 그분이 영원히 변하지 않으신 진리이시요 우리의 복음의 말씀이십니다. 세상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여론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에 이래 저래 눈치만 보다가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눈치를 늘 의식하기에 성령충만 함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으로 담대히 나아가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수요일 아침입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지 답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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