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을 깨닫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본인 스스로 깨달을 수 없기에 타인이나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실 때에야 아하하고 그때 깨달 수가
많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서 인정 해 주신 의인임을 알고 의인답게 행동 했지만 고난을 통하여 친구들과 오랜 공방전으로 나는 죄가 없는 의인임을 자처하다가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끝까지 보시고 무식함이 깨달을 때가 은혜를 입은 자를 알게 될 것입니다.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심
이제 욥의 친구들과 긴공방전은 끝이 나고 욥 38장부터 하나님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욥은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이제야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안아 주시고 위로 해 주실줄 알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너는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하시면서 조금 책망하시듯이 너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대장부처럼 묻는 말에 대답해야 돼 내가 땅에 기초를 세울 때 너는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
네가 그렇게 많이 알거든 대답해봐 하실 때 욥은 조금은 어리둥절하면서 계속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욥에게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바다와 육지, 빛과 어두움, 그리고 기상에 대한 이러한 신비한 자연현상을 열거하시면서 욥에게 이 모든 신비한 일들을 알 수 있는 지혜가 있느냐고 질문하실 때 욥은 어느 하나 답을 할 수 없는 무지한자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욥은 하나님의 위로 한마디로 모든 고통을 감수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위로 보다는 욥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계획임을 알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 위로함을 받아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위로해 줄 수도 있었지만 위로 해 주고 끝냈다고 하면 욥의 무지함을 어떻게 하고요. 욥은 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대 놓고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생일을 못마땅히 여기는 것처럼 태어나게 한 것을 원망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듯 하면서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은 무지함을 깨닫게 함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 뵈는 것이 없기에 용감할 수밖에 없지요.
무지함은 은혜 없음과 같다
이러한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혜 없음>이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만 보고 졸졸 따라다녔는데 예수님이 없을 때 그 당황함 초대교회 그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 전하고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 없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나라 60,70년대 삼각산, 청계산, 각 교회마다 기도의 열정이 예수님 없이 가능했을까요? 가까운 우리 교회만 보더라도 우리 교회가 세워지기 20년 전 전에 있던 교회에서 기도의 불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금요철야가 얼마나 뜨겁고 기도소리가 얼마나 큰 던 지 이웃집에서 민원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올 정도 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제 자신부터 물질의 풍부속에 영적의 빈곤함을 은혜의 부재함을 선 듯 선 듯 보곤 합니다.
이로 인한 크고 작은 일이 생기고 다시 엎드려할 시간임으로 몸으로 느껴집니다. 어제 오후부터 계속 내리는 비가 오늘 아침에도 계속 내립니다. 저는 7년 전에 가까운 집사님의 뇌출혈사건으로 내리비는 하나님의 눈물 임을 깨닫습니다. 우산 들고 걸으면서 하나님의 눈물임을 느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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