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으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묵상함으로 삶의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낭독하고 그냥 지나치면 변하지 않은 이유는 아래글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예수님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낭독하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기 때문에 묵상하면서 삶가운데 읊조림으로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깨닫게 함입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와 마가요한이 제1차 전도여행 떠나 구브로에 가서 먼저 복음을 전합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기에 먼저 거기서 복음을 전하고 저하는 바나바의 마음을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조카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험난한 길이지만 복음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여행은 순탄한 길이 아니라 오늘 새벽예배 본문(행 13:13~31)을 통해 험난한길임 알 수 있습니다. 고후 11장에는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험한 길인지 잘 표현했는데요 바다에서 파선을 당해 며칠을 바다 위에 있었야 했고 버가에서 비시다 안디옥으로 가는 길에 큰 산맥이 있고 그곳에 강도 떼가 있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린 마가요한은 심한 뱃멀미와 높은 산과 강도 떼 때문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 선교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지만 나중에 이러한 일을 경험 삼아 마가복음을 쓴 큰 일을 한 자이기도 합니다.
어렵게 인내하면서 사도바울과 바나바는 드디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합니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안디옥교회하고 구분이 되지요? 비시디아 안디옥은 지금 터기 동쪽에 있습니다.
이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안식일에 회당에 갔습니다.
회당이 있다는 것은 유대인이 있다는 증거이기에 그곳에 가서 먼저 복음을 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의 방식대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낭독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은 모세 5경을 말하는데 꼭 낭독을 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낭독만 하고 주님을 모르면 유대인
문제는 여기에 있는것 같습니다. 낭독하고 묵상이 없기에 모세 5 경과 선지자글이 누구에 대하여 쓴 글인지 모르기에 오늘날까지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구약 39권은 옛 언약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언약의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요 5:39절 말씀에 너희들이 영생이 있을 줄 알고 구약을 상고하거니와 다 나(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고 꼭 집어 말씀 하셨는데도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낭독하고 교훈만 삼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기에 복음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물론 마지막 때에 그들을 다 주께로 돌아온다고 예언은 하였기에 지금은 마지막이 가까워 오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늘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회당장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몇 군데 낭독한 후에 사도바울에게 설교할 것을 권 하길에 사도바울은 기회다 싶어 거침없이 먼저 말씀을 전 합니다.
먼저 이들이 다 유대인들이기에 이스라엘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을 택하시고 하면서 구약을 거침없이 다윗왕까지 설파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 믿기 전에는 히브리인중에 히브리인이요 이것은 오리지널 이스라엘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지킨 자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약을 꿰고 있습니다.
사울왕을 폐하게 하고 다윗왕을 세워 이 자가 내 마음에 맞는 자요 내 뜻을 이루리라 하고 언약하신 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구주가 오시는데 예수님 이 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아는 자 변한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살리셨고 부활하게 하셔서 죄를 사함 받는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오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중요한 point는 말씀을 읽는 것도 중요 하지만 이 말씀이 누구에 대한 말인지 다 예수님 대한 말씀으로 나에게 다가와야 내 마음의 변화 있고 삶의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유대인으로 남겼지을 당한다는 말씀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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