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죽음의 독입니다. 중독은 술이나 마약등 약물이나 사상 그리고 사물인데 노름이나 게임등으로 사물을 잘 판단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중독되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청년때에 믿음이 없을 때 술 중독까지 가지는 안 갔지만 갈 뻔했습니다. 같은 또래 친구 4명들이 어찌 다 술고래(?) 이였기 때문 모여 마시기 시작하면 다 들 끝을 보는지라 그것이 문제이었습니다.
본문 왕하 4:38~41입니다. 엘리사가 길갈에 갔는데 마치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이 드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고 왕이나 지도자가 심한 독재자로 군림하다 보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근으로 엄청 어려움을 당하는 것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북이스라엘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어머니를 이세벨을 엎고 우상을 섬기다 보니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삶은 더 곤궁에 빠질 대로 빠진 상태입니다.
엘리사의 스승 엘리야가 있을 때 아합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참히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온 나라적으로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을 비가 오지 않게 하신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의 기도로 비가 오게 하였지만 여호람왕도 역시나 우상을 섬기다 보니 또 가뭄으로 흉년이 든 것입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길려내는 선지자 학교에 몇 군데 있어 엘리사가 순회 목사님처럼 다니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길갈에 있는 선지자 제자들에게 왔는데 제자들이 엘리사 선지자 앞에 쭈욱 앉습니다. 학교라 해 봤자 건물도 없고 그냥 나무밑에 서 앉혀 놓고 엘리사 선지자가 일방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부에서 허가를 내 주기는 만무할 일이고 도와주기는커녕 핍박이라도 안 했으면 다행이지요. 오죽 배가 고파 선지자 앞에 주욱 앉아 있는 제자들을 보노라니 엘리사 선지자는 요즘은 말로 귀가 찰 노릇입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제자들을 위해 국을 끓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려 들에 나가서 들 호박을 따 와서 썰어서 국에 같이 넣고 끓여서 퍼주어 먹게 하였는데 먹은 무리가 국을 먹다가 소리칩니다.
국을 너무 쓰다 보니 <죽음의 독> 같다고 하여 다 들 능히 먹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그 가루를 솥에 넣고는 이제 퍼다 주었라 하니 퍼다 주매 솥 가운데 독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이 묵상되기로는 <죽음의 독>이라는 말씀에 한창이나 머물게 하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독을 저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술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처음 먹을 때는 얼마나 쓴 지요? 처음에는 이 쓴술을 왜 마시지 했는데 친구들이랑 하루 이틀 마냥 4년을 퍼 마셨으니 완전 술 독 빠져 살 았다고 할 수 있었지요.
나중에 은혜받고 끊었지만 그 후유증이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술 끊고 몇 년이 손이 덜덜 뜨는 수전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한양대 병원에 실려가 죽다가 살아났는데요 한 달 만에 하나님께서 살려 주셔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술은 죽음의 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는 국이 쓴 것은 술은 아니지만 그 무엇가가 있기에 쓴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 선지자는 가루를 가져오게 하여 그 가루를 국에 넣으니까 죽음의 독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가루는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중독에 걸린 사람은 사람의 힘으로는 헤어 나오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어떤 중독에 걸린 자들도 완전히 빠져나와 완치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그 자리로 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해결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늘 부족한자이기에 성령의 임재하심 성령의 기름부음심 성령의 충만함을 간구하지만 그리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 부탁 드립니다. 다 들 주안에서 강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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